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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을 엿보다 ‘판유리공장 이계장’ 특별展
한국 최초 판유리공장과 노동자의 삶 조명,인천도시역사관서 10월까지 전시
발행일자 : 2018년09월05일 17시35분

한국 최초의 판유리 공장의 역사와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판유리공장, 이계장展'이 송도에 위치한 인천도시역사관에서 오는 10월까지 개최된다. 

전시는 한국전쟁으로 페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유엔(UN)의 도움을 받아 인천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판유리공장과 그 안에서 산업화를 이룬 노동자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규모는 작지만 폐허가 된 땅, 전후복구사업, 한국 최초의 판유리공장, 이계장의 공장생활, 이계장의 전성기로 나누어지며, 지금은 사라진 인천 만석동 판유리공장 대한 소개와 이계장으로 투영되는 판유리공장 노동자의 전성기를 돌아보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국 최초로 판유리를 생산한 공간과 산업화 역군으로서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최초·최대의 판유리공장 

인천 만석동에 있었던 인천 판유리공장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UN 한국재건단(운크라)'의 지원을 받아 정부가 추진했던 3대 기간산업 중 하나였다. 당시 정부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경제를 복원시키는데 필요한 기간산업으로 시멘트, 비료, 판유리를 선정하고 문경에 시멘트공장, 충주에 비료공장, 인천에 판유리공장을 건립했다. 

인천 판유리공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건설된 판유리공장이었다. 공장 부지는 1940년대 일제가 군수공장을 짓기 위해 묘도를 깎고 바다를 메워 만든 3만7000 평의 매립지로 당시 일제가 부설한 인천 북부해안 철도가 인천제철부터 인천역까지 이어져 있어 만들어진 판유리를 인천역까지 옮긴 뒤 다시 인천역에서 서울로 직송이 가능했다. 또 충청도 안면도 앞바다에 규사가 100년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매장이 돼있었고 매립할 때부터 부두시설을 갖추고 있어 선박을 이용해 재료를 운반하기에 적합한 만석동이 판유리 공장을 짓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만석동이 판유리공장 최적지 

1957년 9월 30일 공장 준공식을 갖고 판유리 생산에 들어간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인천 판유리공장은 그 후 공장을 확대해 가면서 건설자재인 판유리를 비롯, 형광등 등에 쓰이는 관유리, 자동차 유리 등 다양한 유리제품을 생산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유리공장으로 거듭났다. 

1980년대 들어 경쟁업체 등장과 저렴한 외국산 유리가 수입되면서 유리 공급량이 많아지면서 회사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오던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는 인천 공장의 폐쇄를 결정하면서 인천 판유리공장은 문을 연지 꼭 40년이 되던 1997년 12월 결국 공장문을 닫고 말았다. 인천 판유리 공장에는 한때 2만여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 인천 판유리공장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으며, 그 자부심은 공장이 문을 닫은지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40년 역사 담아 


이번 전시는 한때 인천을 대표했던 공장이었던 인천 판유리공장의 역사와 함께, 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과 회사생활을 보여준다. 1957년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최태섭 사장이 이승만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보고했다는 판유리 시제품 등의 재현품도 전시하는 등 인천 판유리공장과 관련한 70여점의 자료가 출품됐다. 아울러 1965년 공장에 입사하여 1988년 퇴직할 때까지 24년간을 이 공장에서 근무했던 이병무 선생의 일기를 전시하여 당시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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